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스페인 전쟁 (문단 편집) === 미국과 스페인의 쿠바 대립 === [[쿠바]]는 16세기 [[이사벨 1세]] 당시 스페인이 정복한 이래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배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었다. 쿠바 섬을 차지함에 따라 스페인은 플로리다 해협을 통제하고 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스페인령 식민지들로 들어가는 항로를 차지할 수 있었기에 카리브에서 가장 중요한 식민지였으며 스페인 자본에 의한 플랜테이션 농업도 성행했다. 얼마나 부유한 섬이었는지, [[7년 전쟁]] 당시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스페인 총독부를 점령한 [[영국]]은 총독부에서 노획한 재화로 막대한 전비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의 국력이 쇠퇴하고 [[나폴레옹 전쟁]]과 뒤이은 내전으로 스페인이 식민지 관리를 못 하게 된 사이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식민지들은 일제히 독립을 선언하고 스페인 세력을 대륙에서 축출하였다. 그리고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에 개입하지 마라"는 [[먼로 독트린]]을 내세워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개입 반대를 천명했고 미국과 독립에 성공한 다른 식민지들의 영향을 받은 쿠바에서도 독립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하지만 국력의 한계로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은 사실상 포기한 스페인도 쿠바의 독립만큼은 결코 허용하지 않았으며 이는 10년 전쟁(1868~1878)에서 쿠바 독립군을 격파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편, 미국은 독립 이후 국가적 확장이 시작되면서 일찌감치 쿠바 섬을 노리게 되었다. [[루이지애나 구입]]으로 미국의 영토를 2배로 늘린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시절부터 쿠바의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쿠바에 대한 관심을 표한 것이었다. 더욱이 1848년 미주리 타협으로 북위 36도 30분 이남에 위치해 노예주가 세워져야 할 [[캘리포니아]]에 자유주가 세워진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낀 남부 노예주들은 우리도 새로운 노예주를 추가해 세력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남부 확장주의자들의 주도 하에 미국의 쿠바 합병 시도가 시작된다. 1854년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 윌리엄 마시의 지시로 [[벨기에]] 오스텐더에서 주스페인 미국대사 피에르 술레와 주영국 미국대사 [[제임스 뷰캐넌]], 주프랑스 미국대사 존 메이슨이 비밀리에 만나 쿠바 합병 전략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들을 한 보고서를 작성한 후 [[백악관]]에 제출하였는데 보고서의 내용은 "미국이 스페인에게서 쿠바를 구매하는 것이 국익에 유익하며 매입 금액은 1.5억 달러 정도로 추산 중"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 가격은 [[루이지애나]]나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으로 구입한 [[서부]] 지역(1500만 달러)의 10배나 되는 가격이었으며 720만 달러에 구매한 [[알래스카]]의 20배가 넘는 가격이다. 또 미국은 1819년 스페인과 협상을 통해 [[플로리다]]를 양도받은 적이 있어서 스페인이 이번 제안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 기대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가 가는 내용이었는데 문제는 뒤의 내용이었다. "이 제안을 스페인이 거절할 경우 '힘으로 빼앗아도 정당하다'"고 했는데 다시 말해 미국의 쿠바 매각 제안을 스페인이 거절할 경우 [[미국-멕시코 전쟁|몇 년 전 멕시코한테 그랬던 것처럼 '''스페인이랑 전쟁을 해서 강제로 뺏자는 것이었다.''']] 이 '오스텐더 성명'은 얼마 후 피에르 술레의 실수로 내용이 유출되었는데 이걸 본 스페인의 반응은 '''"너 미쳤나?!"''' 당시 스페인 입장에서는 쿠바의 경우 그 다음 세기 [[프랑스]]의 [[알제리]] 같이 단순한 해외 식민지가 아니라 수백 년 동안 꾸준히 투자하고, 이민을 보내고, 현지 사회를 기르면서 육성한 자국의 정당한 고유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각 제안을 거절하면 힘으로 빼앗아도 정당하다니, '''[[답정너|"안 팔면 전쟁이다?"]]'''라고 협박하는 거랑 다름없는 것으로 대놓고 스페인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이에 경악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은 물론, 무력으로 노예제를 확장시키려는 시도에 분노한 북부 자유주들까지 거세게 항의하면서 미국의 쿠바 합병 시도는 흐지부지 되었다. 그러나 오스텐더 성명과는 별개로 쿠바 섬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높아져만 갔다. 쿠바의 [[플랜테이션]] 자본은 스페인 자본에서 대부분 미국 자본으로 교체되었고, 쿠바 거류 미국인도 늘어만 갔으며 쿠바 경제의 미국 예속이 심화되었다. 전쟁 직전인 1894년에는 쿠바의 수출품 중 '''무려 90%'''가 미국으로 향했으며 반대로 쿠바의 수입품 중 40%가 미국산 물품이었다. 사실상 쿠바는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했고 스페인으로서는 [[대서양]] 건너 쿠바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있어 미국보다 열세인 건 당연했으나 결코 쿠바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쿠바와는 별개로 미국은 스페인의 다른 식민지인 [[푸에르토리코]]나 [[필리핀]], [[괌]] 등에도 관심을 보였으나 당시에는 쿠바만큼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